북한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지속되고 있는 식량난과 그에 따른 탈북의 행렬, 그리고 핵을 협상수단으로 삼는 북한의 외교 행태가 혹시 북한 체제 붕괴의 징조는 아닌가? 그러나 경제적 곤경과 대외적 고립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오히려 북한 체제의 안정성을 말해주는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이렇게 모순되어 보이는 오늘의 북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서 올바른 대북 정책을 이끌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북 정책을 둘러싼 ‘남남갈등’도 여기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책세상문고?우리시대 076《북한 정체성의 두 얼굴》은 북한의 정체성이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으며 향후 어떤 변화를 보일지 전망한다. 아울러 통일을 위해 남북한이 문화적 측면에서 어떤 접점을 모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본다. 이러한 작업은 북한에 대한 편향적 시각에서 벗어나 북한을 바로 보고, 통일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변화의 기로에 선 북한의 정체성
북한 체제는 분명 과거에 비해 경제, 사회, 외교 등 다방면에서 열세에 처해 있고, 이러한 현실을 은폐하거나 상쇄시키기 위해 국가 정체성을 호명해왔다. 정권과 대중이 단결해 국가 주권을 위협하는 어떠한 외부의 도전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담론을 끊임없이 재생산해온 것이다. 이는 한 마디로 정체성 정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북한의 정체성은 외부와 갈등이 있을 때 더욱 강화되었다. 반면 국제 사회의 식량 지원이나 남북 교류 협력 등과 같은 자연스러운 대북 접촉은 북한 대중들에게 국가 정체성을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따라서 밖으로부터 그리고 안으로부터의 도전에 직면한 북한의 정체성이 변화의 길로 접어든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북한에 대한 우리의 대응 전략으로 민족 정체성을 제시한다. 즉 통일을 위해서는 남북한이 공유할 수 있는 민족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동질성 회복보다는 이질성을 수용하는 자세라고 주장한다. 오랜 분단 속에서 초래된 남북의 이질적 정체성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이해하고 남북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민족 정체성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다양한 대북 인식이 자유롭게 경쟁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지속하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북한의 변화가 아래에서부터 자연스럽게 전개되고 남북간에 새로운 민족 정체성이 모색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정체성 정치
이 책에서는 북한 정권과 대중, 북한과 국제 체제들 사이에 긴장이 형성되는 지점을 발견하고자 하며, 정권이 이를 봉합하거나 저지하는 방법을 ‘정체성 정치’라는 용어로 살펴본다.
제1장에서는 북한 정체성의 기원을 형성 배경과 주요 역사?정치적 사건이 남긴 영향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북한의 정체성이 형성된 배경을 정치?경제?문화의 측면에서 짚어보고, 항일 유격투쟁, 한국 전쟁 이후 주체사상의 절대화 과정 등을 살펴봄으로써 그것이 북한사회의 성격과 정권 그리고 대중의 일체화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제2장에서는 북한 정체성의 실제를 내용과 기능 측면에서 파악한다. 북한의 정체성은 집단주의에 바탕을 둔 자주성을 요체로 한다는 것을 밝히고, 구체적으로 민족주의적 정향과 독자적 사회주의관을 논의한다. 그리고 국가 정체성의 기능을 ‘동일시’와 ‘구별짓기’로 설명한다.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제3장에서는 북한이 체제 통합과 보전을 위해 전개하고 있는 정체성 정치를 통해 국가 정체성의 효과를 살펴본다. 이에 대한 고찰은 대내적 측면, 대외 관계, 남북 관계 등 세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제4장에서는 탈냉전 이후 세계화 시대에 접어든 국제 질서 하에서 북한의 정체성이 안팎으로 받고 있는 도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체성이 지속되는 요인을 살펴본다. 끝으로 맺는 말에서는 이러한 북한의 국가 정체성과 정체성 정치가 급변하는 세계 질서에서 어떤 위치에 놓여 있으며 향후 어떤 변화를 보일지 간략히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