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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오면과의 인연
홍기빈 그날과의 인연글입니다 | 그날이오면과의 인연 2010.12.06 22:04:55
그날이오면 
홍기빈그날과의 인연글입니다
추천 : 205 이름 : 홍기빈 작성일 : 2007-12-16 23:26:13 조회수 : 1,491
내가 대학에 들어온 해에 책방 [그날이 오면]이 문을 열었으니까 이제 내 지난 반생이나 같은 나이를 먹은 셈이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의 삶과 그 이후의 삶을 비교하면 후반부는 완전히 “난장판”이었던 듯하다. 도대체 10년 후 아니 단 1년 후에 내가 어디가서 무슨 짓을 하고 있을 지 생각하면 한숨만 나오고 예측도 안되고 하는 나날이었으니까.
대학 시절에 보았던 [그날이 오면]의 모습도 한마디로 “난장판”이었다는 생각이 떠올라 자꾸 웃음이 나온다. 셀폰이 지배하는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야 당연히 없어졌지만 당시에는 어디서 술먹자는 또 어디로 오라는 온갖 메모가 우선 [그날] 대문 앞에 서민아파트 베란다의 빨랫감처럼 나부끼고 있었고,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삼삼오오 짝을 지어서서 온갖 이야기 꽃이 핀다. 집회라도 또 가두 투쟁이라도 있었던 날은 더하다. 일단 들어서면 코와 눈을 찌르는 최루탄 냄새가 여기 모인 이들이 어디서 무얼 하다 온 종자들인지를 간명하게 밝혀준다. 게다가 집회에 들고 나간 온갖 시위 용품 - 각양각색의 울긋불긋 깃발은 그래도 좀 덜 흉하다. 때로는 장구에 징에 온갖 풍물 악기까지 - 을 맡겨 두어 카운터 옆 어딘가에 뒹굴고 있으며, 그 가운데에 간간이 학생증을 맡겨놓고 돈을 “차용”하는 이들도 심심치 않게 뵌다. 물론 이 모든 상황을 돌보는 이는 맘씨 좋은 “그날 아저씨”와 “그날 누나” - 본명보다 더 본명같은 이름들 - 이다. 마지막 하지만 가장 중요한 등장 인물로, 이 모든 혼란의 와중에서 캑캑거리며 따지며 버티며 궁싯거리며 카운터의 가엾은 아르바이트 학생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인간을 가장 지치게 하는 것은 뻔한 패턴의 반복이다. 모름지기 최악의 고문의 하나는 기승전결과 구체적 진행의 디테일까지 모두 빤히 보이는 책이나 음악이나 영화나 드라마를 꼼짝없이 묶인 채 계속 읽고 보고 들어야 하는 것 아닐까 한다. 21세기 자본주의가 혐오스러운 것은 물론 여러 이유가 있다. 사람을 실제로 굶게 하고 전쟁을 벌여 사람을 실제로 죽거나 팔 다리 머리통이 서로 떨어져 날아가게 만드는 등. 이보다는 비교도 힘들만큼 소소한 것이지만, 내가 이런 세상에 살기 싫다고 문득문득 느끼는 때는 나를 포함한 인간들의 행동과 움직임이 뻔한 동기로 뻔한 전개로 뻔한 종결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하루에도 무수히 반복하는 것을 발견할 때이다. 물론 그 핵심 줄거리는 돈과 영화(glory)와 성(sex)일 것이다 - 이 후자의 두 가지는 돈으로 쉽게 환원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니까. 그것보다 더욱 경악스런 것은, 천하의 천치라고 하더라도 단박에 파악하고 싫증을 느낄만한 이런 온갖 행위의 패턴들을 전 사회적 차원에서 집단적으로 반복하며 아예 “국민적” “민족적” 운동이나 되는양 사람들의 턱 아래로 종주먹을 들이미는 사태이다. 공항에 들어올 적에 입국 심사관 카운터의 양옆으로 삼성 애니콜인가에서 설치한 광고 TV를 본 적이 있는지. 그것을 보는 순간 우리는 “아, 우리는 또 전지현과 이효리가 지배하는 한국으로 돌아왔구나”하는 무거운 한숨을 쉬게 되지 않는가.
어쩌면 “난장판” 같았던 나의 지난 반생이라는 게 그 뻔한 패턴을 나름대로 피해보겠다고 혼자 온갖 “개지*”을 했던 이야기였던 것 같다. 아직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때가 되려면 멀고 멀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만 따져봐도 별로 밑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딴 걸 제쳐놓고라도 일단 한 순간도 지루한 적이 없었으니까. [그날이 오면]의 추억을 이야기하겠다 해놓고서 못난 반생 이야기를 너절하게 늘어놓은 이유가 있다. 어찌보면 이렇게 “난장판”의 모습의 삶을 살게 된 것이 옛날에 본 [그날이 오면]의 “난장판”의 이미지의 영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앞에서 잠깐 묘사한 “난장판”에는 도대체 세상의 어떤 “책방”에서 이따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싶은 오만 기상천외의 천태만상이 다 있었다. 그런데 찾아보려 찾아보려 눈 씻고 보아도 없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무기력”과 “지루함”이었다. 그 책방을 찾는 이들도 또 그 책방을 만들어가던 이들도 결코 자본주의의 뻔한 인간 행위의 패턴의 굴레에 갇혀 돌아가는 이들이 아니었고, 머릿 속에서든 팔다리로든 어떻게든 나날이 새로운 것을 만들고 모색하는 에너지가 있었던 이들이다. 여기에는 주역도 조역도 단역도 심지어 관객도 따로 없었다. 머리든 가슴이든 몸이든 삶의 에너지가 남아 있는 이들이 다함께 모여 만들어냈던 에너지의 장이었다.
좋은 대학의 3요소는? 요즘 여러 대학의 총장님들께서 떠들어대는 글로벌 어쩌고 이야기는 동네 유치원에나 가서 하라고 해라. 정작 중요한 것은 좋은 도서관, 좋은 친구, 좋은 책방 (하나 더 있으면 값싸고 친절한 술집). 이 중 하나 (혹은 두 개)라도 제대로 건지고 향유할 수 있었던 나는 전 세상에서 가장 복받은 대학 생활을 누린 자의 하나라고 믿는다.
[그날]은 지금도 건재하다. 지나온 세월에 얼마나 우여곡절이 많았을까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하지만, 87년 이후 그만큼의 세월을 살아온 나도 오늘도 씩씩하고 싱싱하고 때로 능글맞게 껄렁거린다. 하물며 신림동을 위시하여 전국의 모든 생각있는 독서가들의 애정과 함께 자라온 [그날]은 또 얼마나 넉넉하고 싱그럽고 힘이 넘치겠는가. 삶이 지루하고 뻔뻔하다 싶어 숨 크게 쉴 곳을 찾는 이들에게 여기 붙어라고 말하련다. [그날]은 언감생심 “어이구, 어렵다더라 살려야지”라고 인상쓰며 이야기할 대상이 아니다. 이효리와 전지현 등등의 지배 하에 지칠대로 지친 당신 바로 당신이 와서 당신과 당신의 후대의 미래를 모색하며 손을 벌려야 할 곳이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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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오면과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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