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2월.2일자 기사입니다.
학회그날이오면에서 기사를 퍼왔습니다.
1988년 문을 연 뒤, 딱 한번 옆 건물로 확장이전했을 뿐 ‘인문사회과학서점’으로 23년간 한결같이 그 자리를 지켜온 서울대 앞 ‘그날이오면’(=‘그날서점’)이 지난달 12일 인터넷서점을 열었다. ‘인터넷그날’(www.gnal.co.kr)은 인터넷 포털에서 ‘그날이오면’을 치면 나오는 이 서점 사이트 주소로 들어가면 이용할 수 있다. ‘그날 서점’을 직접 방문하기 어려워 다른 인터넷서점을 이용하던 이들도 이제 인터넷그날을 통해 책을 사볼 수 있다. ‘그날’에 없는 책도 ‘책주문게시판’이나 ‘그날지기 전자우편’(
gnalzigi@gmail.com)으로 주문하면 받아볼 수 있다. 중고 책을 사거나 팔고 싶은 이들을 위한 중고책 직접교환 장터도 열렸다.
전통의 오프라인 사회과학서점 ‘그날이오면’이 인터넷서점을 연 것은 갈수록 엄혹해지는 운영난을 타개하고 활로를 모색하려는 것이다. 28일 오후, 서울 관악구 신림9동 녹두거리에 묵묵히 세월을 견디는 느티나무처럼 서 있는 ‘그날서점’을 찾아, 두 명의 ‘그날지기’ 김동운·유정희 공동대표와, ‘그날서점’의 운명을 함께 걱정하는 학생 모임인 ‘그날학회’ 회원들을 만났다.
온라인서점 개통으로 책 배송에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더니 김 대표는 “배송이 어려울 정도로 주문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밝혔다. 유 대표는 “후원회원 분들의 도움으로 인터넷서점을 열었다”며 “비용을 대느라 결혼반지도 팔았다”고 했다.
“‘인터넷그날’ 서점이 책 리뷰와 책에 대한 견해들이 활발하게 소통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1998~99년 매달 학생·독자의 책읽기 활동 공간으로 서평지 <그날에서 책읽기>를 펴낸 적이 있는데 그런 활동이 인터넷그날에서 이뤄지길 고대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신자유주의 흐름이 책시장을 장악한 탓에 도서정가제가 잘 지켜지지 않고 있어요. 대형 인터넷서점들과 달리, 저희는 처음부터 가격(할인)에 제약을 갖고 출발합니다. 신·구간 모두 정가 10% 할인하되 이중 7%는 구입자 마일리지로, 나머지 3%는 양심수 후원금으로 적립됩니다.”(김동운)
인터넷그날의 개통에는 그날서점 후원회(회장 장경욱)와 이 서점이 해마다 열어온 서평대회인 ‘그날 서평대회’의 서평심사위원들의 도움이 컸다고 한다. 그날서점은 사회과학서점들이 문을 닫던 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중반까지도 2층에 책카페를 열고 책세미나, 연극, 사진전 등 다양한 문화활동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1997년 이른바 ‘공안권력’의 국가보안법을 내세운 ‘서점침탈사건’(유정희 대표 구속)을 들려줄 때 김 대표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날서점은 개인이 운영하는 가게인데도 230여명의 후원회원이 있지요. 97년 서점침탈이 벌어졌던 날 서점 앞에 500여명 학생들이 항의집회를 열었어요. 남영동 대공분실에 유정희씨가 연행되고 저도 연행(불구속 조사)됐어요. 그날 저녁 서점 앞에 모인 학생들을 보는 순간, 그동안 학생들과 함께하며 노력해왔다 생각했는데, 학생들도 그렇게 생각했구나, 내 개인적인 생계공간이 아니라 이 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로 만들고자 하는 공동체 공간이구나, 절감했지요.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야겠다 마음먹었죠. 그런 무게감이 엄청나게 큽니다. 보람이기도 하고요.”
그날서점은 ‘그날서평대회’ 외에도, 학생·독자와 함께하는 책 저자·번역자 강연회를 열어왔다. 서울대 학생들의 모임 ‘그날 학회’도 이런 행사에 참여한 학생들로부터 시작됐다. 그날학회 회원 박천우(언론학 대학원생·2003학번)씨는 그날서점을 주제로 전공 리포트를 쓰기도 했다. “그날서점은 신입생 때 선배들이 이곳에서 <전태일평전> 같은 책을 사주고, 그 신입생이 선배가 되어 다시 후배들에게 책을 사주는 전통이 있는 공간입니다. 단순한 동네서점이 아니라 몇 안 남은 인문사회과학 서점이잖아요? 총학생회가 활동이 부진할 때 총학생회가 할 몫을 지탱해준 것이 그날서점이었어요. 서울대 안에 23년 된 5·18기념탑이 3년 전부터 버려진 채 방치돼 있었어요. ‘그날서평대회’ 뒤풀이자리에서 이 탑 복원 논의가 시작되어, 학교쪽을 설득하고 결국 지난해 4월 복원되었어요.” 사회학과 대학원생 장경훈씨도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그날서점에서 책을 읽은
경험이 남긴 흔적들이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대학가 사회과학서점들은 대학생 사회과학 독자층 감소와 인터넷서점 발흥으로 열린글방·전야(서울대 앞), 오늘의책(연세대 앞) 등이 문을 닫는 등 내리막길을 걸어왔다. ‘그날서점’은 지금도 오직 인문사회과학책만으로 5만여권 장서를 갖춘 이름 그대로 인문사회과학서점이다. 성균관대 앞 풀무질, 건국대 앞 인서점, 동국대 앞 녹두서점 등 다른 사회과학서점은 자구책으로 대학교재, 어학책, 고시책 등을 함께 판매하며 생존하는 형편이다. 지난해 12월 국내 72개 인문사회과학 출판사모임인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가 그날서점에 수여한 감사패에는 이렇게 씌어 있다. “인문사회과학 출판인들의 동반자, 사회 어두운 곳 비춰온 등불 같은 서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