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미야 가린, <프레카리아트>

- 21세기 불안정한 청춘의 노동

“지금 제 처지는 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전 공부를 열심히 안 했으니까요.”

‘한겨레21’에 연재된 '노동현장탐사’ 기사에, 대형마트의 비정규직 청년을 인터뷰한 대목을 읽다 가슴이 콱 막혔다. 그에게 화를 내어선 안 되는 거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최저 시급, 그나마도 마트가 업체를 바꾸면 하루아침에 잘려나가는 일자리가 순전히 ‘자기 책임’이라니.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안했고, 그래서 ‘명문대’에 못 갔고, 그래서 대기업에 취직 못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비정규직 인생을 받아들일 이유가 될까? 비정규직이 공부 안 한 사람을 혼내려고 만든 벌칙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너도나도 대학까지 나오려고 몸부림치는 이 시대에 비정규직은 점점 늘어날까? 그는 “그게 왜 내 책임이냐?”라고 하지 못하고 어째서 그 시스템에 면죄부를 줘 버릴까?

<프레카리아트>의 저자 야마미아 가린은 스무 살부터 이 상황을 겪었다. 그녀는 대학에 낙방하고 재수를 하다가 프리터(프리+아르바이터의 조어.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15세~34세 연령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한때 ‘자유와 여유’로 예찬된 프리터 생활이 실은 빈곤과 불안정함의 굴레라는 걸 뼈저리게 느꼈다. ‘난 꿈이 있어’란 다짐으로 버텨도 보았지만, 앞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절망했고, 이 모든 상황이 자신의 못남 때문인 것 같아 자존감은 점점 위축되었다. 그녀는 자살도 여러 번 시도했다.

현실의 무기력함을 충족시켜줄 환상을 좇아 우익 단체에도 가입했던 그녀는, 우연히 일본 헌법 전문을 읽은 것을 계기로 자각했고, 작가로 데뷔함과 동시에 반빈곤운동가로 활동하게 되었다. 이 책 역시 수많은 동료 프리터들을 인터뷰하여 썼다. 그녀는 책의 서문에서 당차게 선언한다. ‘자기 책임’이란 말로 몰아가는 사회에 대해 ‘반격을 시작하자’고.

이게 왜 '내 책임'이냐고

수천만 원 등록금을 벌기 위해 두세 개씩 알바를 하는 한국 젊은이들과, ‘프리터’란 이름으로 만화방에서 쪽잠을 자는 일본의 젊은이들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하다. 한국에서 ‘알바생’은 아예 통계 자료에도 잡히지 않는 수치이지만 일본에서는 하나의 사회 집단으로 분석된다는 것이 다를까. 책에 따르면 일본의 프리터는 200만 명이고,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는 1800만 명이다. 일하는 사람 세 명 중 하나가 비정규직이며, 24세 이하에서는 그 비율이 둘 중 하나다. 일본의 ‘평생직장 신화’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이 누린 ‘좋았던 시절’을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바로 일본의 현재를 따라가고 있다.

일본에서 ‘프리터’ 붐이 인 것은 90년대 중반부터다. '한 직장에 매인 샐러리맨'에 비해 ‘생계를 보장하면서 하고 싶은 다른 일을 하는’ 프리터 생활은 미디어에 매력적으로 비춰졌다. 그러나 그 시기에 프리터 생활을 시작한 10대, 20대들은 지금 30, 40대가 되어서도 대부분 안정된 직업과 거주지를 구하지 못한다. 저자에 따르면 프리터의 평균 연수입은 106만 엔으로 정규직의 1/4 이하이며, 나이가 들어도 이 수준은 개선될 여지가 별로 없고 도리어 노동 시장에서 퇴출될 위험만 커진다. 게다가 프리터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매우 차갑다. ‘게으르고, 책임감도 없고, 믿을 수 없다’는 것.

저자가 인터뷰한 프리터들은 대체로 위의 대형마트 비정규직 청년 같은 반응을 보인다. “사회나 남 탓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꿈을 좇느라고 이 생활을 택했으니까, 학교를 나온 후부터 성실히 일한 사람과 저 같은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요.” 과연 프리터는 성실하지 못한가. 저자 자신도 아르바이트 하나로는 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두세 개의 일을 뛰었다고 한다. 언제 해고될지 모르기 때문에 눈치가 보여 월차나 병가도 못 쓰기 일쑤다. 어째서 그런 노력은 ‘성실함’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인가. 아니, 그보다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왜 홈리스까지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인가. 애초에 그것부터가 이상하다. 하고 싶은 일과 미래의 인생이 교환된다는 것은 너무 잔혹하지 않은가.”

정말 동감이다. 인간이 우수한 종이라면 틀에 박힌 삶을 거부하기 때문이 아닐까. 기업가들이 원하는 노동력이 되기 위해 불철주야 경쟁하는 것 외에, 뭔가 의미가 있는 다른 일을 한다거나, 잠시 자기를 찾아 방황한다거나, 꿈을 좇는다든가 하는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은가. 잠깐 그런 시기를 보냈다고 그 대가로 평생 불안정한 삶을 살아야 하다니, 이런 사회가 제대로 된 사회인가. 그러면서도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둥, 패기가 부족하다는 둥 하는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일본 얘기를 하고 있지만 한국이 아바타처럼 겹친다)

‘자기 책임론’은 ‘사회적 모순을 값싸게 은폐하는 수단일 뿐’이다. 1995년 일경련(일본의 전경련)은 앞으로 노동 인력을 셋으로 나누겠다고 밝혔다. 그 중 하나가 ‘고용유연형’으로, 필요할 때 쓰고 언제든 자를 수 있는 비정규직이다. 1996년에 자민당 정부는 일경련의 선언에 맞춰 노동자파견법을 확대 개정했다. 일본의 ‘프리터 붐’은 비정규직을 늘리기 위한 기업과 정부의 의도적인 작품이었다. 한국도 IMF 이후 비정규직이 확대될 때 '인생 2모작'이니 '투잡족'이니 하는 신조어들이 나타나 현실을 왜곡했다.

2009년 '자유와 생존의 메이데이' 행진을 이끌고 있는 아마미야 가린(경향신문)

프레카리아트, 반격을 시작하다! 

‘프레카리아트’란 말은 2003년 이탈리아 거리의 한 낙서에서 비롯되었다. ‘불안정한’의 뜻인 ‘프레카리오’와 ‘프롤레타리아트’가 결합된 말이다. 마르크스가 본 노동자들, 즉 대공장에서 함께 일하고 함께 자본가와 싸우는 프롤레타리아트는 소수가 되었다. 21세기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고립 분산되어 개별적으로 노동하는 파트 타이머, 하청, 파견, 계약, 프리랜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새로운 노동자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은 업종과 소득의 차이를 넘어 불안정함에 시달린다는 특징을 공유한다.

따라서 전통적인 노동자운동과는 다른 운동, ‘프레카리아트 운동’도 출현하고 있다. 저자가 이 책을 쓴 2006년 당시 일본에서 ‘프리터 노조’ 등이 시작되고 있었다. 책보다 먼저 그 운동들이 한국에 건너왔고, 특정 기업에 속하지 않는 노동조합인 ‘청년 유니온’이 창립되었다. 최근 청년 유니온은 주요 커피 프랜차이즈 점이 알바생들의 주휴수당을 체불한 것을 집중 공격해 하나씩 성과를 내고 있다. 청년 유니온이 아직 법외 노조라는 어려움이 있지만, 부당체불로 인한 이미지 타격을 두려워하는 기업주들은 쉽사리 노조의 요구를 외면하지 못한다. 이런 사례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저자는 프레카리아트 운동의 요구가 무슨 거창한 게 아니라고 한다. 한 마디로 이거다. “살게 해줘!” 국가라면, 국민이 잘났든 못났든, 최소한 살 수는 있게 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루살이처럼 살지 않게 기본소득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해주고, 노동법을 어기는 기업주는 처벌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 삶이 피폐해지는 이유는 이주 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기 때문도 아니고, 철거민들이 촛불 들고 ‘소란을 피우기’ 때문도 아니다. ‘우리 자신의 책임’ 때문은 더더욱 아니다. 인간을 일회용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사회, 그런 시스템을 두둔하는 기업과 정부가 잘못한 것이다. 자기 책임론에서 벗어나는 것, 그리고 '생존'이라는 당연한 요구를 권리로 인식하는 것, 여기서부터 반격은 시작될 것이다.

“싸움의 테마는 단지 '생존'이다. 살 수 있게 좀 해달라는 것이다. 살아갈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내놔라. 밥은 먹게 해 줘라.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일은 시키지 마라. 나는 인간이다. 슬로건은 단지 이것뿐이다.”